회복 피라미드
회복은 일직선이 아니에요. 저는 제 회복을 피라미드로 그려 봐요. 돌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이 중요해요. 제가 어떻게 피라미드를 쌓았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Bia를 만든 뒤로 저는 매일 Bia를 썼어요. 아침에 15분 정도 쓰고, 출근길 버스에서도 쓰고, 은행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썼어요. 드디어 모든 게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어요. TV 프로그램에서 구토 장면이 나와도 눈을 감지 않고 끝까지 보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식사 후 배가 불러도 장염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지 않는 제 모습도 발견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니, 더 많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점점 쉬워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저는 이 모든 진전을 치료사에게 이야기했어요. 치료사는 '지금 왜 모든 게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어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에요.
저는 구토 공포증 치료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지금까지는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겠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무엇이 달랐을까요? 지금의 저와 7년 전의 저, 두 모습을 비교해 봐야 했어요. 그러다 깨달았어요. 제 구토 공포증 회복은 구토에 관한 것이 아주 조금이고, 대부분은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공감에 관한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구토 공포증 회복을 하나의 선으로 그렸어요. 선이 올라가면 회복 중이고, 내려가면 상태가 끔찍한 거죠. 당연히 삶은 그보다 복잡했고, 공포증이 제 삶에서 물러나면서 저는 회복을 피라미드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피라미드의 돌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이 중요해요.
기초
노출 및 반응 방지를 연습하면서, 저는 삶의 다른 문제들도 다룰 수 있는 기술과 자신감을 얻었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제 구토 공포증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친구들은 전혀 몰랐어요. 사실 함께 술집에 가고 싶었지만 늘 핑계를 대며 빠졌다고 설명했어요. 부모님께는 고등학교 때 축구를 그만둔 이유가 공포증 때문이었다고 말씀드렸고, 아내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에서 제가 일찍 나가자고 했던 걸 기억하는지 물었어요(아내는 기억하지 못했어요). 구토 공포증을 털어놓고 나니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고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어요. 제 피라미드의 토대가 만들어졌어요.
과거의 나에 대한 공감
돌이켜 보니 공포증이 제 행동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순간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공포증이 저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제 자신에게 소리치고 싶었어요. 그 장면을 떠올려 봤어요. 피자를 먹는 것도, 차 뒷좌석에 타는 것도 무서워하는 여덟 살 꼬마에게 제가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요. 이 죄책감을 내려놓고, 그 아이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걸 이해한 것이 제 회복에서 정말 큰 부분이었어요. 무거운 짐이 내려갔고, 돌이 더 쌓였어요.
구토 공포증이 내 정체성은 아니에요
솔직히 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영화관, 콘서트, 술집이 재미있는 척하는 건 아닐까? 그런 곳은 비좁고, 세균과 아플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사람들이 도대체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궁금했어요. 화장실에 급히 가야 할 때는 어떻게 하지? 저는 이 모든 걸 제 성격이라고 받아들였고, 이런 것들을 즐길 가능성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이것들이 제 공포증이 내리고 있던 결정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궁금해졌어요. 이제는 콘서트에 가는 게 즐거울까? 제 구토 공포증은 여행을 싫어했지만,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려고 여권을 신청했어요. 콘서트에 갔어요.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도 한잔했어요. 제 공포증 때문에 생긴 불편감(더러운 불편감)인지, 그냥 그 활동이 즐겁지 않아서 생긴 불편감(깨끗한 불편감)인지 주의 깊게 살폈어요. 그러면서 저는 라이브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점심을 먹으러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하고, 술집은 그냥 시끄럽고 제 스타일이 아니어서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제 성격을 발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친구와 가족에게 구토 공포증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진짜 제 모습을 그들과 나눌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진짜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어요. 중요한 건, 이런 깨달음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데 답답해하는 대신 기뻐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 여덟 살 아이를 이미 용서했으니까요. 피라미드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일과 삶의 균형
아시겠지만, 구토 공포증과 함께하는 삶은 정말 괴로워요.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고, 장 보러 가는 것 같은 평범한 일도 힘들고 무서워요. 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일에 파묻히기가 쉬웠어요. 안전했지만, 친구들이 캠핑을 가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동안 저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이번에도 이게 그냥 성격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쩌면 나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건가? 그런데 공포증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데 점점 더 성공할수록 제 삶은 넓어졌어요. 아내와 저는 기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점심도 먹으며 하루를 보냈고, 저는 배부른 상태로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불안은 전혀 없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퇴근 후 외출이 즐거웠어요. 일을 조금 줄이기 시작했고, 삶을 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어요. 커리어에 대한 목표도 달라졌어요. 이건 무서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오후 5시에 노트북을 덮는다는 건 하고 싶은 걸 할 자유가 생긴다는 뜻이었고, 그건 점점 더 쉬워졌어요.
만들기로 마주하는 구토 공포증
이런 삶의 변화들을 거치는 내내, 구토 공포증은 제 삶에 다시 비집고 들어오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어요. 토하는 꿈을 자주 꿨고, 재발할까 봐 걱정했고, 사실은 회복하지 않았는데 회복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건 아닌지 의심했어요. 20년에 걸쳐 구토 공포증은 자기 논리를 완벽하게 다듬었어요. 제가 내세우는 모든 논점을 비틀 준비가 된 프로 토론 팀 같았어요. 켄 굿맨은 자신의 책 The Emetophobia Manual에서 구토 공포증을 이기는 건 한 수 한 수 두는 게임이라고 말해요. 불안이 돌아와도 안달하며 '아, 안 돼'라고 생각하지 말래요. 대신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래요. '안녕, 불안아. 다시 와 줘서 반가워. 이번에도 내가 너를 아주 박살 내 줄 텐데, 준비됐어?'라고 말하라고요.
"안녕, 불안아. 다시 와 줘서 반가워. 이번에도 내가 너를 아주 박살 내 줄 텐데, 준비됐어?"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든, 신경세포의 물리적 연결 때문이든, 20년 동안 굳은 습관 때문이든, 구토 공포증(그리고 강박장애)은 앞으로도 슬금슬금 돌아오려 할 거라는 걸 저는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단단히 쌓은 회복 피라미드의 토대가 있고, 저는 그 꼭대기에 서서 말해요. '덤벼 봐, 불안아. 어디 한번 해 봐.'나의 회복 피라미드
회복의 모습은 사람마다 달라요. Bia는 여러분이 자신만의 회복 피라미드를 쌓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고, 공포증에게서 삶을 되찾는 데 필요한 토대를 넓힐 수 있도록 매주 새로운 콘텐츠와 활동을 더하고 있어요. 구토 공포증과 함께한 제 여정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여러분의 여정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