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토 공포증 연대기
제 구토 공포증이 살아오는 동안 어떻게 변해 왔는지 시간 순으로 정리했어요.
제 치료사는 자주 '그럴 만한 이유가 뭘까요?'라고 물었어요. 이 질문을 던지고 답해 보는 건, 답답하거나 슬프거나 압도될 때 잠시 멈추고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이 됐어요. 구토 공포증을 극복해 가면서, 제 삶에서 구토 공포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이해하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아래에 제가 이해하는 제 구토 공포증의 연대기를 나눠 볼게요.
- 7살 - 구토 공포증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밤에 잠들지 못하고 누워서 제가 토하는 모습을 계속 반복해서 떠올리던 거예요. 이 때문에 정말 괴로웠어요. 그걸 멈추려고 저는 대신 떠올릴 장면을 하나 만들어 냈어요. 운하를 따라 나아가는 배와, 그 뒤로 출렁이며 퍼지는 물결을 떠올렸어요. 소리, 냄새, 운하의 굽은 곳에서 배가 속도를 줄이고 곧은 길에서 다시 속도를 내는 모습까지 상상했어요. 특히 이 배가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처음으로 돌아가고, 다시 반복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떠올렸어요. 이게 제가 거의 20년 동안 구토 공포증의 생각을 덮으려고 썼던 첫 번째 '깨끗한 생각'이었어요.
제 이론은 무언가가 저를 만성적으로 메스껍게 만들고 있었다는 거예요. 원인이 무엇이든, 만성적인 메스꺼움은 구토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어요. 늘 속이 안 좋았으니 그 생각을 하고, 대비하게 된 거죠. 이게 악순환의 시작이었어요. 메스꺼움은 불안을 일으켰고, 불안은 저를 메스껍게 했어요. - 11살 - 저는 치과가 너무 싫었어요. 다들 어떻게 그걸 견디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제는 알아요. 치과에 대한 두려움의 뿌리는 치과 의사 때문에 헛구역질이 날까 봐 무서웠던 데 있었어요. 어린 저에게 구토 공포증은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줬어요. 치과는 더 힘들었고(헛구역질이 나서 토하면 어떡하지?), 영화관에 가는 것도 더 힘들었고(토할 것 같은데 화장실에 제때 못 가면 어떡하지?), 차나 비행기 타기도(차멀미나 비행기 멀미를 하면 어떡하지?), 학교 시험 날도(시험 중에 토할 것 같으면 어떡하지?) 그랬어요. 모든 게 더 힘들었어요. 저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는 데 아주 능숙했어요.
- 14살 - 축구를 그만뒀어요. 그때는 제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정을 돌아보면 이제는 완전히 구토 공포증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요. 코치는 토할 때까지 뛰게 하겠다고 겁을 주곤 했고, 큰 경기 전의 긴장감은 메스꺼움과 불안을 일으켰어요. 축구를 그만두자 익숙한 엄청난 안도감이 바로 찾아왔지만, 길게 보면 회피의 악순환을 굳히고 불안 반응을 더 키웠어요.
- 16살 - 전교 조회 시간에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어요. 전교생 앞에서 제가 토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게 또렷이 기억나요. 그 상상이 불안의 파도를 일으켰어요. 저는 심장마비가 온 줄 알았고, 겨우 복도로 나갔는데 아주 친절한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병원에도 갔는데, 의사는 불안 때문인 것 같다며 자낙스를 처방해 줬어요. 하지만 그때도 저는 제게 구토 공포증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혹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친구들보다 제가 토하는 걸 훨씬 더 신경 쓴다는 건 알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때부터 구토 공포증은 저를 단단히 붙잡았어요.
- 17살 - 마침내 '나는 왜 토하는 게 이렇게 무서울까'를 검색해 보고 구토 공포증을 알게 됐어요. '구토 공포증의 징후 20가지' 같은 목록을 발견했는데, 목록을 읽어 내려가며 하나하나 다 제 얘기라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제가 느끼는 걸 설명할 단어가 생겼다는 게 정말 기뻤고, 한동안은 그걸로 충분했어요. 저는 구토 공포증을 제 정체성의 일부로 여겼어요.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도,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사람도, 운동선수도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어요. 구토 공포증과 함께 사는 데 안주했어요.
- 19살 - 가끔 찾아오는 공황발작과 불안 때문에 이따금 몇몇 의사를 찾아갔어요. 의사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구토 공포증이 있다는 걸 말하지 않으려고 피했어요.
- 22살 - 만성적인 메스꺼움에 지쳐, 불안을 다스리겠다는 목표로 치료사를 찾아갔어요. 첫 상담에서 구토 공포증이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고 불안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던 게 기억나요. 저는 평생 구토 공포증을 안고 살 거라고 믿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치료사는 곧바로 제 공포증을 알아보고 노출 치료를 해 보자고 권했어요. 그는 저에게 '깨끗한 불편감과 더러운 불편감'이라는 개념을 알려 줬고, 이건 저에게 아주 도움이 되는 관점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노출을 너무 빨리 진행했고, 저는 그에 대한 믿음을 잃었어요. 회복이라고 할 만한 걸 이루기 전에 치료를 그만뒀어요. 치료사 없이도 집에서 노출 세션을 이어 가려고 Bia의 첫 버전을 만든 것도 이때예요.
- 26살 - 구토 공포증에서 주의를 돌리려고 일에 파묻혀 지냈어요. 일은 제 핑계였어요. '토할까 봐, 그리고 화장실을 못 찾을까 봐 너무 무서워서 오늘 밤엔 나가기 싫어'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일해야 해'라고 하면 됐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토 공포증은 저에게서 점점 더 많은 걸 빼앗아 갔어요. 방금 산 음식에 대해 침투적 사고가 들었고, 서핑은 더 이상 편안한 활동이 아니라 촉발 요인이 됐어요(물속에 나를 아프게 할 세균이 있으면 어떡하지?). 끼니를 거르기 시작했어요.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을 수도 있느니 차라리 배고픈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아침, 배가 고팠지만 아침을 거르기로 하던 순간 무언가 탁 하고 맞아떨어졌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구토 공포증은 제 삶을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빼앗아 갔어요. 저는 정면으로 맞설 준비가 됐어요.
가까운 곳에서 치료사를 찾았어요. 그는 제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제가 구토 공포증 때문에 화가 나거나 답답할 때 그게 왜 그런지 이해하도록 도와줬어요. 그는 클레어 위크스 박사와 역설적 과정 이론을 소개해 줬어요. 천천히, 저는 제 삶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4년 전에 접어 두었던 Bia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계속 만들어 나갔어요. 그건 저에게 치료가 되는 일이었어요. 노출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노출에 대해 생각했어요.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효과가 있는지, 마치 언어를 배우듯이요. Bia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달은 게 바로 이때였어요. - 27살 - 8개월 동안 더 치료를 받은 뒤, 돌파구가 찾아왔어요. 어느 날,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고, 그저 산책하고, 새소리를 듣고, 먹고 마시는 걸 즐기고 싶었어요. 그 뒤로도 구토 공포증은 돌아오려고 시도해 왔어요. 구토 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 낼 도구와 능력이 저에게 있다는 건 100% 확신해요. 치료와 노출이 제 삶을 구했어요. 이제 저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해요.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들의 구토 공포증 여정을 돕는다는 목표로 Bia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회복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요. 제 치료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삶은 두려움 너머에 있어요."
구토 공포증과 함께한 제 여정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